나름대로 논어 읽기 1

日記 2015. 12. 19. 00:03

군자(君子)는 부처다. 깨닫고 늘 수행(修行)에 정진하는 사람이다.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아닌, 누구나 될 수 있는 인격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해하면 논어의 첫 구절을 이렇게 읽을 수 있다.

學而時習之,不亦說乎
보통 우리가 알기로 이 구절은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로 읽는다. 공부를 좋아하는 소위
학자가 아니라면 누가 예습복습을 반복하며 기뻐할까? 논어를 편집한 사람들이 가방 끈 길이를 그렇게
중요히 여겨 제일 첫 구절로 놓았을 것 같지는 않다.

배운 것은 글자가 아니고 아마도 도(道)일 것이다. 배웠을 때 바로 깨닫는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이성적으로는 깨달은 바가 있어도 그의 습관(濕觀)에 따라 잠재의식이 갖은 감정을 일으키고 말하고 또
행동한다. 따라서 배워 깨달은 것에 비추어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늘 돌아보아야 한다.
이렇게 깨달은 바를 수행 정진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늘 기쁘다. 이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과 같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한가. 마음이 맞는 친구란 귀하기 이를 데 없다.
인생의 바닥을 지나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지위도 명예도 재산도 건강도 없을 때에도 소식과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는 것을.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냄이 없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흔히 온(慍)을 성내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원망하다라는 뜻도 있고, 글자를 뜯어보면 마음에 흔들림,
특히 치솟아 오르는 감정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러한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오롯이 자신이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군자라면 그게 곧 부처가 아닐까?
더 나아가, 보왕삼매론의 마지막 구절처럼 억울함을 당해서도 마음에 동요가 없다면 이것이
군자이고 부처라 할 것이다.


Posted by lenient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