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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행복

日記 2016.01.06 12:56

가끔 우리는 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이 ABE 전집 중에 있었다. 그 제목이 인상적이었는지 아직도 기억을 하고 있다. '우리가 왜 사는지 잘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에 읽어봤었는데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이게 답이로군'이라 할만한 생각을 얻진 못했던건 기억난다. 아마도 어려서였겠지. 비슷한 경우로 Daniel Gilbert의 'Stumbling on Happiness'가 그랬다. 그 뒤로도 가끔 왜 사는지 궁금해 했었는데, 청소년기 중반에 나름 사람은 행복하려고 사는거라고 결론지었다. 

삶과 행복. 최근 10년 안쪽으로는 삶은 happening이라고 깨닫고도 '행복하려고 산다'는 문구에 모순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삶은 행복하라고 준 것이 아니고 그냥 주어진 것이다. 그 삶에는 이러저러한 일을 겪에 되는데 그 와중에 이성과 감정이 바람에 이는 먼지처럼 일어난다.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흔히 생각한다. 감정은 사람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즉각적으로 대응해야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기작이다. 그래서 감정은 빨리 일어난다. 공포심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생활 환경에서 공포심의 역할은 초기 인류에게 필요했던 만큼 중요하지 않다 (Fearless in Invisibilia 참고). 그러나 공포심은 쉽게 일어나고 또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조종하는 데 잘 쓰인다. 종교에서 언급하는 지옥이 대략 그런 예겠지.

쉽게 공포를 느껴야 혹시 만날 지 모르는 있는 맹수를 피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먹을 것이 늘 귀하기 때문에 탐욕스러워야 삶을 유지할 수 있고, 어쩌다 물이나 먹을 것을 두고 경쟁하게 되었을 때 아드레날린을 뿜어내기 위해서는 흥분(혹은 분노)하여야 쟁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먹거리를 기를 수 있게 된 후로는 이러한 기작보다는 앞일을 계획하는 것이 중요해서 전두엽에 내일(혹은 미래)을 모의(simulation)할수 있는 부위가 발달하였을게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사람의 생존에는 감정보다는 이성의 기작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의 삶에서 위에서 언급한 본능적 감정은 우리를 그닥 기분 좋은 상태에 머물게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체로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 공포를 느낄 일이 없고 (얼마나 공포심의 임계치가 낮고 느낌의 강도가 센지를 생각해보면 이런 상태는 매우 드물게다), 탐욕이 채워지고, 또 경쟁할 일이 없다면 행복하겠지. 그래서 그런 상황에 이르려고 출세하려 하고, 돈벌려 하고, 좋은 사람하고 결혼하려하고 그러겠지. 하지만 모든 생명에게는 사계절이 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좋은 시절은 봄철에 한 주, 가을철에 한 주처럼 짧다. 정신없이 살다보면 그나마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보내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행복할 수는 없는걸까?

고대의 서양철학부터 현대의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궁극적(혹은 지속적) 행복은 중요한 화두이다. 사람의 삶이란 그러한 행복을 얻기(또는 구하기)위한 것인가? 그러한 행복은 어떤 것인가? 어떻게 그렇게 행복할 수 있는가? 그 쪽에서 그 답을 찾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성인이라 일컬어지는 분들은 그 해답을 찾아 남겨놓았다. 말하자면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게 마음을 쓰는 방법이 이미 알려져있다. 그렇지만 행복이 삶의 목적이라 하지는 않는다. 행복하게 사는 것은 많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태도 중 하나일 뿐이라 한다. 그 깨달음을 논어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논어를 읽으며 그 깨달음을 다시 확인하고 계속 그 마음 씀을 익히니 즐거울 따름이다. 그게 바로 논어의 첫 구절이다.

 

Posted by lenient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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