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공자 말하길

巧言令色 鮮矣仁
앞에서 이해한 인(仁)의 의밀르 따르면 이 말은 우리말로
"듣기 좋은 말과 보기 좋은 낯을 꾸미는 것이 사람 사이의 바른 관계(仁)인 경우는 드물다"고
읽을 수 있다. 꼭 쓴 음식이 몸에 좋은 것은 아니라해도 달디 단 음식이 몸에 좋은 경우는 드물다.
당장 보이는 이익을 따르는 것이 결국은 자신에게 좋은 결과로 돌아오는 경우가 드문 것처럼
말이다. 자기 자신에게는 법륜 스님이 법문 중에 늘 말하는 것 처럼 쥐가 쥐약을 먹는 꼴이고,
이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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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子曰
공자의 제자 有子가 말하기를

其為人也孝弟,而好犯上者,鮮矣
효(孝)는 부모를 공경함을 말하고 제(弟)는 동생이나 공경한다는 뜻이다.
이 문구가 전체적으로 윗사람을 대하는 사람됨에 대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논어와 같은 글이 국왕/사대부의 권위주의에 바탕한 체제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데에 쓰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제(弟)가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공손하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충분한지 모르겠다.

특히, 우리나라는  말에 어른에게 이르는 법과 친구간에 말하는 법, 아랫사람을 하대하는 법이 정해져 있어
나이 몇 살 어리다고 마구 대하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그 중에도 초면인 사람에게, 또는 제자에게도
하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경우를 비추어 보면 아래처럼 이해할 수도 있다.

"그 사람됨이 아랫사람에게도 공손하면서 윗사람에게는 함부로 하는 경우는 드물다." 

不好犯上,而好作亂者,未之有也
다음 문구는 댓구이면서도 이어지는 내용으로 읽을 수 있다.
"윗사람에게 함부로 하려 하지 않는데 행동거지가 난잡한 사람도 없다. "

君子務本,本立而道生
위의 두 구절이 사람에 대한 예시라면 다음 두 구절은 그러한 사람됨이 어디서 오는지를 설명한다.
"군자(깨달음에 이르고 항상 정진하는 사람)는 근본을 (바로 세우는 데) 힘쓴다.
(왜냐하면) 바로 세운 근본에서 (바른) 길이 나기 때문이다."

논어에서 도(道)를 한마디로 이야기 하기는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군자(혹은 부처)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바', 즉 깨달음의 실천적인 면이라고 이해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孝弟也者,其為仁之本與
결론으로 "아랫사람에게(도) 공손한 사람이 되는 것이 사람 사이의 바른 관계(仁)을 이루는 근본이다".
위에서 나온 도(道)와 같이 인(仁)도 우리말로 간단히 정의하기가 까다로운데,
한자의 경우 그 글자가 형성된 과정을 보면 그 원래 의미를 조금이나마 유추해 볼 수 있는
경우들이 있다. 이미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인(仁)의 뜻(어질다)에 비추어 글자를 해석하지 않고
글자 그대로를 두고 보면 仁은 사람(人)이 둘(二)일 때를 상징한다. 흔히 두 사람이 같이 잘 지내기 위한
조건으로 仁의 의미를 생각하여 친하다 혹은 어질다고 해석하는가 보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이 같이 잘 지내려면 서로 비슷한 부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부분에 대한 인정과 이해가
훨씬 더 중요하다. 부부관계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두 사람이 잘 지내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미덕이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가로막는 것은 다름 아닌 나이다. 나의 취향이
나의 견해가, 나의 행동이 모두 나의 경험과 습관에 의해 나도 모르게 정해졌을 뿐 옳은 것이 아님을
미처 모르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님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깨닫고 나면 아랫 사람 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긴다.
설사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아랫사람 혹은 미물에게까지도 공손하게 대한다면
어느 사람과 함께 하더라고 잘 지낼 수 있기에 사람 사이의 바른 관계(仁)를 이루는 근본이라 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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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君子)는 부처다. 깨닫고 늘 수행(修行)에 정진하는 사람이다.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아닌, 누구나 될 수 있는 인격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해하면 논어의 첫 구절을 이렇게 읽을 수 있다.

學而時習之,不亦說乎
보통 우리가 알기로 이 구절은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로 읽는다. 공부를 좋아하는 소위
학자가 아니라면 누가 예습복습을 반복하며 기뻐할까? 논어를 편집한 사람들이 가방 끈 길이를 그렇게
중요히 여겨 제일 첫 구절로 놓았을 것 같지는 않다.

배운 것은 글자가 아니고 아마도 도(道)일 것이다. 배웠을 때 바로 깨닫는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이성적으로는 깨달은 바가 있어도 그의 습관(濕觀)에 따라 잠재의식이 갖은 감정을 일으키고 말하고 또
행동한다. 따라서 배워 깨달은 것에 비추어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늘 돌아보아야 한다.
이렇게 깨달은 바를 수행 정진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늘 기쁘다. 이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과 같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한가. 마음이 맞는 친구란 귀하기 이를 데 없다.
인생의 바닥을 지나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지위도 명예도 재산도 건강도 없을 때에도 소식과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는 것을.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냄이 없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흔히 온(慍)을 성내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원망하다라는 뜻도 있고, 글자를 뜯어보면 마음에 흔들림,
특히 치솟아 오르는 감정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러한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오롯이 자신이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군자라면 그게 곧 부처가 아닐까?
더 나아가, 보왕삼매론의 마지막 구절처럼 억울함을 당해서도 마음에 동요가 없다면 이것이
군자이고 부처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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